2009. 4. 28. 10:17

기본적인 것..


유쾌한 이노베이션이라는 책을 보다가, 그동안 '회사에 바라왔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직원을 부속품처럼 취급하지 않고, 가족으로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기본적인 의식주의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회사에 입사할 때 지급받는 작업복, 혹은 체육대회때 나눠주는 티셔츠는 어찌나 획일적이고 개성이 없었던가. 중국산과 조미료에 점령당한 점심 식단은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제공해 주는가. 직급에 exponential하게 비례하는 사무 공간의 크기와 질은 또 어떻던가.

인터넷 벤처 기업의 직원들이 자랑스레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영양가 높은 공짜 점심을 제공받고, 놀이터와 구분하기 힘든 사무실에서 일하는 장면을 보며 느꼈던 부러움의 실체는, 재기발랄한 개성이나 독특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라는 조직을 둘러싼 환경, 의식주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철학의 문제였다.

회사에서 2년 전 수십억을 들여 컨설팅을 받아 회사의 비전을 만들었었다. 여기저기 포스터를 붙이고 포상을 하고 직원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최근 다른 컨설팅 업체로부터 새로이 비전을 수립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중요한 건 요란한 캠페인이나 구호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 누군가가 알아 주었으면 한다.

2009. 4. 17. 11:23

Currency와 Concurrency

USD 라는 운영 체제가 있다. 출시 초기에 몇 번의 커널 패닉이 있긴 했지만, 지난 수 십년간 그럭저럭 잘 굴러왔다. 최근 금융공학이라는 가상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지만 치명적인 버그로 인해 thrasing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해커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라이브러리 간의 호출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디버깅이 어려우며, 어디서 얼만큼의 메모리가 새고 락이 걸린 것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일단의 해커는 프로세스 본위제로 돌아가자고 하고 있다. 작금의 문제는 하나의 CPU가 여러 대 있는 것처럼 속이는 멀티태스킹-가상화 환경의 불안정성에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모든 프로세스가 한꺼번에 자원을 요청할 경우 CPU는 과부하가 걸려 블루스크린이 떠버릴 수 있다.

금융 서비스는 일반 어플리케이션처럼 가끔 죽어도 상관있는 문제가 아닌, 커널과 직결된 서비스이기 때문에 안정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 번에 하나의 태스크만 처리하도록 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영체제의 사용자는 인간이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고 탐욕스러우며 편리를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원칙론이 승리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적당히 리팩토링을 실시하고 스케줄링을 조정하면서 와치독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타협하지 않을까 싶다.


2009. 4. 17. 00:39

미쉘위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렸던 해. 갓날때 미국으로 이주한 사촌형이 우리 집에서 몇주간 머물렀다. 난생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연배도 비슷했던 까닭에 금새 한가족으로 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 중계가 나올 때면 "USA"를 연호하는 모습은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이 잘 안됐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 이 형은 가족이지만 미국인이구나.

당시의 경험으로 혈연과 지연의 차이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 스포츠 뉴스에서 미쉘위가 나왔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일까. 그렇지 않다. 미쉘위에게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로 인해 호감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지금과 같이 공공연히 관심을 표명할 필요는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된다. 그녀는 엄연히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 사촌형이 PGA에서 날고 긴다 하여도 스포츠 뉴스의 단골 화제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 가족들이 응원하고 기뻐하면 족하다. 이마저도 별다른 왕래가 없다면 삼대를 넘기지 못할 터다.

귀중한 전파와 방송 시간을 미쿡인에게 낭비하느니, 박세리나 신지애를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아니면 그만큼의 방송 시간을 줄이고 다문화 가정 캠페인 광고를 내보내는 게 이치에 맞다.

...게다가 그녀는 네가지도 없는 듯하다.

2009. 4. 12. 10:37

남녀 평등

여성 정책과 관련된 단체에 계신 고모님이 물으셨다.
"여자가 직장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니?"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지만 길게 생각해보지 않고도 "팀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었다.

여성 팀장은 소수지만 있었던 반면, 임원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모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셨다. 회의에 참석해보면 여자는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상당히 놀라워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 남녀 평등이 요원한 국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군대 문제와 관련된 특수성이나 국내 여성 단체의 극단적이고 편협한 주장을 감안해야 겠지만, 평균적인 인식은 아직 상당히 후진적인 게 현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 나라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문제(사실 이게 더 힘든 일이긴 하지만)에 앞서, 시스템의 문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떠오르는 건 두가지.

우선 자녀의 양육 환경. 육아 휴직을 끝내고 아이를 어딘가에 맡겨야 할 때, 마땅한 데를 찾을 수가 없고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친정이나 시댁에서 보육을 도와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담해야 할 기회 비용은 사회 활동으롤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을 상쇄하고도 남기 십상이다.  세계적인 교육열과 그에 따른 버블을 감안하면, 이런 고민은 최소 20년간 꾸준히 괴롭힐 터이다.

그리고 승진에 대한 시스템. 우리 나라는 파벌 문화가 강하고 그 중심에는 술을 매개로 한 관계의 강화가 있다. 조직의 상층부로 갈 수록 강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점을 감안하면, 상사와 2차 3차까지 술자리를 함께하며 얻어지는 가산점은 결정적이다. 호불호나 시시비비를 떠나서 말이다.
물론 그런 문화는 급속히 퇴색하고 있지만, 그런 세대가 조직 상층부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기 까지는 10여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볼 때, 여성이 조직에서 공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만큼의 시간은 걸릴 것임을 유추할 수 있겠다.

이런 현실은 하루 빨리 바뀌어야 겠지만,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라는 점을 감안해서 인내심을 갖고 고쳐 나가야 한다.


2009. 2. 13. 10:07

취업을 위해 전공을 바꾼다..

며칠전..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조리사가 되기 위해 다시 배우는 학생에 대한 뉴스를 봤다.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에 눈높이를 낮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었을 게다. IMF 시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몇번 보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명예 퇴직을 한 뒤에 창업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이들에 대한 보도였다.

중년의 가장이 일터에서 쫓겨나 식당을 차리고 번창하는 것이 진정 성공한 것일까 - 개인적으로는 선방이라는 표현이 옳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수년간 습득한 지식을 접어두고 요리를 배워 사회에 첫걸음을 떼는 것이 추천할 만한 일일까. 직업의 귀천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니라, 꿈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앞서 나온 학생의 경우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고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일반화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생존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용산 철거민의 극단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상황에 처한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 전과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게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적극적이었느냐 소극적이었느냐에 따라 당당함의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이런 결심을 하게 하는 원동력은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이 핵심이다.

애초에 잘못든 길이어서가 아니라면, 생존을 위해서 꿈을 접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인 양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옳은가. 나의 불만은 여기에 있다. 오히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구직자를 다루는 게 보다 필요한 기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오히려 전공을 바꿔가며 취업을 해야 하는 시장의 어두운 상황을 전달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생각을 좀더 뒤틀어 보면, 대학은 취업의 전략적 요충지일 뿐이라는 인식이 이미 전제된 것 같다. 그렇다면 취업을 위해 전공을 바꾸는 건 나쁘지 않은 전술적 선택이고. 토목으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논리의 근본에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니..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2009. 1. 23. 22:40

공공 기관의 건물 신축

출근길에 무심히 차창밖을 보다 신축 중인 성북구청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가 제법 진척되어 신청사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런데, 대부분 야트막하고 낡은 건물로 이루어진 주변 풍경과 대비되어 무척 이질적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최근 구청 신축이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 보았던 송파구청이 그랬고, 관악구청이 그랬다.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구세군 건물도 충정로에서 신축되고 있었다.

많은 공공 시설이 공간 부족으로 별관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따른 부대 비용이나 불편함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여 국민의 세금이나 기부금을 건물 신축 비용으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처럼 네트웍과 통신이 발달한 세상에는 더더욱 그렇다. 공간적 분리에 따른 부대 비용이 신축 비용을 초과하는 것은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일 뿐이다. 또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달리보면 그만큼 조직이 비대하다는 것이고, (설마 그렇진 않겠지만) 만약 부동산 가격 상승이 예상되어 실질적 비용 부담이 적다고 한다면 이는 조직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불가피한 건물 신축이 용인되는 때는 언제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주변 환경에 비해 시설이 낙후되고 노후한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런 견지에서, 최근 공공 건물이나 공익 단체의 신축은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 아닐런지.

2008. 3. 3. 14:38

정상 참작

서명덕 기자의 기사 도용 건으로 꽤나 들썩이는 모양이다. 관련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기사를 도용했느냐의 여부에 대해 가부를 내려야 한다면, 나역시 "Yes" 쪽으로 걸겠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느니 조선일보가 다 그렇지 뭐.. 라는 식의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며 때려대는 패거리 문화에 대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법적 판단을 내림에 있어 "정상을 참작한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모 재벌이 휠체어에 앉아 일급 병실에 머물다 면죄부를 줄 때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피고의 그간의 행실과 사건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진정성을 인정해 준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 아니겠는가.

서명덕 기자는 그동안 나름의 철학을 갖고 진정성을 보여 왔다. 하루에 몇 꼭지의 포스팅을 하고, 광고 수입을 이벤트를 통해 환원하고, 자비로 호스팅 비용을 대면서 최선을 다해 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스타트업 기업에 대해 애정어린 시선을 갖고, 자칫 문제될 지도 모르는 정치적 발언도 스스럼 없이 해왔다.

그런 활동을 참작하여, 앞으로 조심하도록(이렇게까지 이슈화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러하리라) 예의를 갖추어 토론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블로고스피어 식의 참여 정의 실현이 아닐까 싶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불쾌한 트랙백과 댓글로 일방적으로 때리는 것은, 그리고 상대방의 사회적 위치와 공공성을 생각지 않은 태도는 너무나 무례하다.

돌을 던지려면 거짓말하는 것도 능력 운운하는 논설위원에게나 던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2008. 3. 2. 22:12

곡물값 상승에 대해 생각해보다

애그플레이션의 원인

TV에서 최근의 곡물값 폭등 원인을 진단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여기서는 근본 원인을 옥수수의 수요 증가로 지목한다. 즉 중국과 인도의 성장에 따라 육류의 소비가 늘어났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 오일을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 연료의 소비를 촉진하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옥수수의 급격한 수요 증가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소비되는 옥수수 사료의 양은 8kg, 바이오 연료의 1일치 소비량은 사람이 먹는 옥수수의 1년치에 해당한다니, 정말이지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옥수수의 가격이 오름에 따라 귀리, 콩, 밀과 같은 농작물을 경작하는 사람들도 옥수수를 경작하기 시작했고, 이는 다시 귀리, 콩, 밀 등의 타 작물의 농산물 가격 상승을 유도한다.

더 중요한 것, 윤리의 문제

고기를 먹거나 자동차를 모는 것은 생존을 위해 값싼 곡물을 먹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만약 내가 고기를 먹거나 자동차를 몰면 다른 사람들이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면, 그것은 (엘 고어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거나 자동차를 모는 것은 연평균 소득이 3만불 이상의 선진국의 라이프 스타일이고 곡물을 섭취하는 것은 소득이 그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층에서 주로 행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최근 옥수수 가격의 급등은 멕시코 서민들의 주식인 또띠야의 가격 폭등을 불러왔고, 그 결과 식사 때에 '물을 더 많이 부어 먹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야 TV를 보거나 아이팟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음식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문제이고, 그 영향력이 몇 단계 거치치 않고 전파되기에 보다 피부에 와닿았던 것 같다.

개인은?

1회용품 소비를 줄이고, 전기를 절약하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농산물 위주의 식단을 꾸리는 것과 같은 작은 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개인이 인류를 위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로 인해 수입이 줄어드는 이들도 생기겠지만, 이런 문제는 유한한 자원을 최대 효용을 얻어낸다는 시장 원리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써 시장을 바라볼 때 방향성을 짚어낼 수 있으리라.

국가는?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8%에 불과하다고 한다. 거기에 각종 개발 규제의 완화에 따라 경작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농산물 수입가가 제조업 수출가보다 높아지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07. 12. 22. 15:59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의 당선은 노무현과 정동영의 정치적 실기가 쌓인 결과라고 본다. 그리고, 노무현은 정치적 돌파력은 뛰어나나 운영의 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최근 일련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보며, 나역시 노무현과 삼성의 결탁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년간 열심히 잘 해왔다.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으나 언론이 무관심한 구석에서는 드러나지 않게 열심히 했고, 제법 잘해냈다고 생각한다.

위 글에 링크된 동영상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통계 지표는 정리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유리하게 포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노무현은 지나치게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대체 전두환이나 김영삼이 근엄하게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지금의 노무현이 진보인가? 보수인가? 단순히 갈팡질팡할 따름인가?
이에 대한 판단은 아직 섣부르게 내려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청와대에 머무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간 고생 많이 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