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5. 14:32

인도네시아 여행 - 생각들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비슷한 면이 많다.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아 상품시장으로의 기능을 수행하다 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광복의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한국에 박정희가 있다면 인도네시아에는 수하르토가 있다. 군사 독재를 행했고 종신 집권을 꾀했다는 점, 그리고 결국엔 실패했다는 점, 현재에도  그네들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이들이 다수 있다는 점 등 두 인물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자카르타의 명소라는 모나스 타워 지하에는 박물관이 있고, 여기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디오라마로 전시하고 있다. 마치 70년대의 이승복 기념관과 같은 분위기에 외세의 침략과 저항, 투쟁과 항거의 기록을 나열하고 있으며, 스피커에서는 끊임없이 행진곡풍의 BGM을 틀어댄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객관적인 사실은, 네덜란드와 일본 치하에서 수탈을 당하다 외세의 힘으로 광복을 맞은 것 아닌가?"라는 냉소적인 생각만 들었고, 이는 똑같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이라서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현재의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20년 이상 뒤쳐진 느낌이다. 도로 곳곳에 설치된 전투적인 동상들, 여기저기 무장한 사설 경호원들,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고 화장실에서 돈을 뜯는 사람들, 택시를 잘못 탔다가 봉변당할 수 있다는 수상한 소문들... 출발선은 같았고, 인구나 자원을 고려하면 우월한 조건에서 시작했던 이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뒤쳐지게 되었을까.

근거없이 추정해보면,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군부 독재의 고리가 너무 늦게 끊어졌다는 점. 우리만 해도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형편에, 30년 넘게 집권했던 수하르토의 망령은 아마도 향후 수십년 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수하르토 사후에도 그의 친인척은 재벌이 되어 경제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고 하니, 삼성이나 조중동 보다도 훨씬 풀기 어려운 숙제를 맡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또 하나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차이. 나는 한국은 냉전시대에 미국식 자본주의의 성공을 보여주는 모델로서 육성(?)되었다는 설에 공감한다. 즉 한국은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미국으로부터 많은 부분 특별한 대접을 받아왔고,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자원이 도리어 독이되어 지금 이순간에도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의 상품 시장과 원자재 공급 시장으로서 유형/무형의 수탈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인도네시아를 바라보는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다만 진심이 느껴지는 친절과 순박함이 느껴지는 사람들과 곳곳에 보이는 역동성이 이 나라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어렴풋이 가질 뿐이었다.
관광지에서 갖는 불쾌함은 비단 여기서만이 아니라 스페인 같은 선진국, 아니 가까운 동해안에 가봐도 겪게되는 것이니 굳이 인니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