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7. 12:51

The Fantastic Flying Books of Mr. Morris Lessmore

픽사의 전직 애니메이터(William Joyce)가 참여해 만들었다는 이북. 아이 생일에 빈손으로 퇴근했다가, 낮에 봤던 환상적인 트레일러가 생각나서 생일선물이라고 급조해서 다운받았다. $4.99.

The Fantastic Flying Books of Mr. Morris Lessmore iPad App Trailer from Moonbot Studios on Vimeo.

이야기와 그림, 음악 모두가 따뜻하고 잔잔한 감동이 있어서 그간 구입했던 이북 동화 중에서는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아이도 은근 좋아해서 15분짜리 애니메이션도 구매했는데, 대사가 없이 음악과 영상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안도했다.

다만 UI나 구성에서 그간 봐왔던 이북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쉽다. 이부분에 대해 좀더 적어볼까 한다.

아이북스나 킨들스토어에서 받는 이북은, 종이책의 컨텐츠를 스크린만 달리한 형태기 때문에 오리지날 컨텐츠만 좋으면 되지만(아직까지는), 앱스토어에서 받는 이북은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컨텐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책보다는 오히려 게임과 비슷한 수준의 경험을 기대하게 된다.

아쉽게도, 아이패드 출시와 함께 무료로 뿌려진 토이스토리를 넘어서는 경험을 주는 이북을 보지 못했다. 몇 가지 이북 동화를 구매해 봤지만, 천편일률적인 구성에 컨텐츠만 달리한 게 대부분이었고, 유료 버전이라 해서 무료 버전에 비해 나을 게 없었다. 이 책도 색칠하기, 글씨쓰기, 음악연주, 퍼즐 같이 일반적인 이북 동화에서 제공되는 미니 앱을 제공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기는 했는데 딱 거기까지고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트레일러에서 가졌던 기대감 대비 실망. 오히려 참신성은 3D팝업북 라푼젤이 더한듯?



그럼에도, 라푼젤보다 $1을 더 받는 이 앱의 "컨텐츠"는 그만큼의 가치가 더 있다. 스토리도 잔잔한 감동이 있고(근데 아이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부분도 있다),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가 적절히 녹아든 화면과 음악도 수준이 높다. http://morrislessmore.com/ 사이트에 있는 메이킹 필름을 보면 개발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매출을 얼마나 올려야 수익이 날지 궁금하긴 하다.

국내 동화는 두권 정도 구매했다가 품질이 많이 떨어져서 이후로 구매하지 않았는데, 요새 구름빵이 인기가 있다하니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은 있다.
2011. 7. 14. 10:49

Kindle 3 사용기

기능 설명은 아래 동영상과 다른 리뷰로 대신하고, 개인적인 감상만 적어본다.



지인에게 부탁해서 Kindle with special offers를 구입했다. 광고가 나오는 $114.99 짜리 모델이다.
국산 이북은 20만원 안팎이라는 점에서, 12만원 남짓한 가격은 큰 경쟁력이다.

e-ink의 해상도는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백라이트도 필요없고 반사도 안되고 높은 해상도는 종이책을 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느린 반응 반응속도와 전환시마다 검게 변하는 화면은 확실히 처음에는 많이 거슬렸다 하지만 그럭저럭 익숙해 진다.
액정이 깨지기 쉽기 때문에, 그냥 본체만 쓰려던 것을 포기하고 케이스를 알아보는 중이다.

인터네셔널버전이 아닌 미국버전(스페셜 오퍼스는 미국내에서만 판매)은 가격, 책 종류, 혜택 등 유리한 점이 있어서 계정을 미국으로 설정하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WhisperNet을 쓸 때 IP 추적을 통해 적발되면 문제가 생기므로 주의를 요한다(http://bit.ly/q3J6KG). 게다가 수리를 받으려면 미국본사로 배송해야 하므로 워런티기간이라도 배송비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국내 도서가 없다는 점이 킨들 구매를 꺼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원서를 많이 본다면 배송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겠다. 또한 아마존의 국내 진출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므로 국내서도 조만간 구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킨들에는 영어사전이 제공되고 단어에 커서를 갖다대기만 하면  단어의 뜻이 나와서 무척 편리하다.

그밖에 노트와 하이라이트, 북마크, 트위터/페이스북 공유 등의 편의 기능이 제공되지만 UI가 편하지는 않아서 많이 활용하지는 않는다. 

브라우저와 MP3 재생 기능도 가능하지만 크게 기대할 바는 못된다. 그냥 없는 셈 치는 게 낫다.

결론적으로, 한글지원이나 AS, UI 등 아직은 불편한 점이 많고, 독서량 자체가 많지 않은 국내 실정에서 킨들의 구매를 권하기는 망설여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원서를 편하게 많이 읽으려는 목적에 부합하고, 가격과 이동성, 편의성도 적당해서 아직까지는 만족스럽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아내도 나의 선택에 수긍하는 눈치다.
2011. 2. 20. 14:29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 - 6점
김종훈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보통 경영자가 자기 회사와 관련해서 쓴 책은 일정부분 감점을 하고 읽는다.
근데 한미 파슨스라는 회사는 확실히 다른 뭔가가 느껴진다. 유한킴벌리와 같은 느낌이랄까 -
회사라는 "조직"이, 직원을 위하고 윤리 경영과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격을 갖춘 시스템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 말이다.

저자가 회사에 대해 내세우는 몇몇 제도는 의외로,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이미 도입하고 있거나 추진 중인 내용이 많이 있다 - 
안식년제, 배우자 건강 검진, 윤리경영 서약, GWP 운동, 독서릴레이운동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렇게 상반된 조직원의 충성도를 가져오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역시 2년을 넘기기 힘든 임원의 수명에 따른 단기 성과 위주의 조직 운영과, 
지속성이 부족한 정책과 비전의 남발에 따른
조직원의 불신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도시 건설 보다는 재건축이 훨씬 까다롭고 어렵듯이, 
창업 시점에 가졌던 구상을 기업의 성장에 맞춰 지속적으로 반영해 나가는 것이 아닌
 기존의 관행과 문화를 깨고 새로 세우는 것은
수십 배는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덮으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2009. 11. 22. 10:24

귀여운 여인

우연히 케이블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1990년도 작품이니 20년이 다 된 작품이지만, 지금 나오는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극한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두 번째로 보게 되니 처음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1. 기업사냥꾼
기업의 청산가치보다 낮게 거래되는 우량한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여 주가가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일반적인 가치 투자자의 접근법이다. 이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는 주가가 제 값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 당장 팔아버려도 상당한 수익이 보장되고, 필요한 경우 사업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려 팔아버림으로써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개봉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인수합병이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뿐이지만, IMF를 겪으면서 인수 합병이나 기업 분할, 청산이라는 용어는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만도기계가 그랬고, 외환은행이 그랬고, 쌍용자동차가 그랬다.
즉, 기업사냥꾼들이 우량한 기업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짓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인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는 개과천선하여 건전한 가치 투자자로 변신하기는 하지만, 이런 변신은 백만장자와 길거리 여인의 사랑 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

2. 라트라비아타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하루 동안의 데이트 장면. 두 연인은 옷을 차려입고 전세비행기를 타고 오페라하우스로 날아가 오페라를 관람한다. 줄리아 로버츠는 깊은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흘리는데, 이 때 관람한 오페라가 바로 라트라비아타다.
파리의 아름다운 매춘부 비올레타와 귀족 알프레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바로 그 작품. 줄리아 로버츠의 눈물은 단순한 예술적인 감동을 넘어, 동병상련의 아픈 심정에서 흘러나왔을 게다.

3. 신데렐라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말도 안되는" 로맨틱 코미디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면 이건 "1999년에 지그가 멸망한다는 소리 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영화다.
신데렐라가 백마탄 왕자와 결혼하는 데에는 마법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는 아무런 도움 없이 백만장자와의 연애에 성공한다. 물론 리처드 기어의 심리 상태나 호텔 매너저의 역할이 약간의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신데렐라와 귀여운 여인 어느 쪽이 비현실적인지 생각해보면. 마법사가 등장하고 12시면 마법이 풀리는 설정은 신데렐라가 말도 안되지만. 왕자님의 초이스를 받기 위해 예쁘게 꾸미고 조신하게 행동했던 숫처녀 신데렐라가 결혼에 골인하는 편이 논리적으로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아니한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이 영화는 무척 재미있고, 유쾌하고, 따뜻하다. 삶이 빡빡하게 느껴질 때, 로맨틱 코미디 한 편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때론 좋은 활력소가 된다.





2009. 6. 30. 10:53

The Conscience of a Liberal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 8점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현대경제연구원BOOKS

책 제목만 보면 미래 예측서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은 진보주의자(민주당 지지자)의 눈으로 미국의 경제와 정치 역사를 돌아보고 뉴딜 정신의 회복을 강력히 주장하는 책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1920년대 전후의 도금시대(Guilded Age)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민주당-공화당 간의 대립과 견제, 이로 인해 국민 경제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더 나아가 오늘날진보주의자가 취해야 할 행동과 경계해야 할 부분을 짚어본다.

사실 미국의 경제사에 대해서는 몇 번 읽은 적이 있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민주(진보)와 공화(보수)의 양당 체제라는 사실 외에는 뚜렷이 아는 게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레이건의 온화한 이미지, 호색한으로만 알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 어떻게 조지 부시 같은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는지, 조지 부시의 당선때 잠시 일었던 부정선거 논란 등등 단편적으로 접한 정보의 이면에는 커다란 의미가 존재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미국의 정치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읽어 내려 갈 수록 다른 듯 닮은 미국의 현실이 국내 정치와 대비되어 공감을 끌어낸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 중 몇가지만 적어본다.

공화당의 주요 전략은 인종 차별이고 한나라당의 주요 전략은 지역 감정이다(여기에 매카시즘도 한국에서는 아직 유효하다).
공화당은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우리는 한나라당 뿐 아니라 민주당도 신자유주의를 선호한다.
공화당은 객관적 수치 보다는 이미지와 선동을 통한 전략에 능하며,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물론 이는 당파의 문제가 아니라 군준 심리를 활용하는데 공통적으로 쓰이는 무기긴 하다).
공화당은 의료보험의 개혁과 싸우고 한나라당은 의료보험의 개악과 싸운다.
공화당은 풍부한 싱크탱크를 보유하고 있고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반면 민주당은 최근들어 조직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한국의 민주당은 여전히 빈약해 보인다).

... 이제 미국은 부시의 잃어버린 8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의 뉴딜이 단지 개인의 성취 만이 아닌, 미국 정치사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반면 한국을 돌아보면, 이제 막 부시의 시대가 개막한 느낌이 든다.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금융 정책이 그러하고, 감세 정책과 양적 완화의 이중적 태도가 그렇고,  의료보험 민영화와 같은 행보가 그렇다. 아마도 부시 정권 이후에 민주당에게 다시금 기회가 주어졌듯이, 우리도 다음 대통령은 민주당에서 나올 지도 모른다(좀더 왼쪽에서 나오긴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의 민주당이 미국의 민주당만큼 주도권을 쥘 만큼 역량이 있고 신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크루그먼 교수는 클린턴 시대의 민주당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때로 본다).

아무튼,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앞으로 5년 간의 정치적 선택이 이후 10년 이상의 경제를 좌우할 것 같다.


2009. 6. 22. 12:55

나쁜 사마리아인들

경제학 콘서트 - 8점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얼마전 읽은 '경제학 콘서트'는 전반적으로 자유 시장의 능력을 긍정하고 있었다. 탄소배출권에 대한 설명만 보아도 그렇다. 환경 비용이라는 추상적이고 산정이 어려운 문제가, 시장이라는 매커니즘을 도입하니 손쉽게 풀린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재 가격을 척척 찾아내는 놀라눈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시장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 중 '출발선을 다르게 놓는다'는 내용이 있다. 타이거 우즈와 일반인과 같이 수입 격차가 현저한 경우에 어떻게 형평성을 맞추어 조세를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인데, 많은 내용을 잊어버리긴 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출발선을 다르게 설정해서 동기 부여를 모든 시장 참가자에게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월스트리트 제국 - 10점
존 스틸 고든 지음, 강남규 옮김/참솔

월스트리트 제국에서는 미국의 현대 경제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책을 보면 오늘날 미국의 세련된 경제 체제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숱한 인플레와 디플레, 탐욕과 오만, 비리를 경험해 나가면서 자리를 잡아간 것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오직 끊임없는 성장과 인플레이션의 경험만을 지닌 한국 경제가 앞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단숨에 읽는 세계사 - 10점
역사연구모임 엮음/베이직북스

얼마전에 읽은 단숨에 읽는 세계사의 현대사를 보면서, 미국도 제국주의적인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에 자뭇 놀랐었다. 미국 영주권을 따기 위해 필리핀에 원정 출산을 떠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였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 10점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부키

이런 배경 지식을 갖고 읽은, 그리고 작금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기조를 추종하기에 급급한 우리 나라의 상황 하에서 읽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까발린다.

세상을 설명하기 쉽도록 모델을 세우는 작업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모델을 세울 때는 그것이 성립되는 제약과 한계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뉴턴 역학과 슈뢰딩거 방정식은, 각각을 적용하는 상황이나 가정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역사는 말한다.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먼저 넘어간 국가들이 아직 농업 사회에 머물러 있던 국가들에 대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업 국가가 될 수 있었던 후발 주자들은 어떤 보호 조치를 취했는지. 그리고 공업 사회에서 지식 사회로 넘어가는 오늘날 선진국들은 어떤 짓을 다시 저지르고 있는지. 농업이나 공업은 개방을 요구하면서 지식은 장벽을 쌓아가는 선진국의 양면성을 비판한다.

그것은 사다리에 먼저 올라가서 걷어차 버리는 행위이고, 어른과 어린이가 출발선을 같이 놓고 달리자는 소리와 같다.

어쩌면 세계는 평평하다를 읽지 않은 채로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잣대로 가늠해볼 때, 시카고 학파와 케인즈 학파의 논의는 시각에 따른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신자유주의자와 장하준 교수의 논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시간이라는 중요한 축을 제거하고 완전 시장을 가정한 모델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금에 목도하는 경제 사태와, 이 책이 조목조목 내세우는 논거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2009. 6. 20. 18:19

신경숙/최규석

가난하지만 소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시절.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오신 어머니. 그리고 이제는 그분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나.

엄마를 부탁해와 대한민국 원주민은, 주제는 다르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시대상이나 등장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감수성이 많이 닮았다.

엄마를 부탁해 - 10점
신경숙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나는 서울 토박이인 데다가 지방에 친척도 별로 없다. 부모님도 대학까지 보내신 걸 보면 조부모님 대에도 어느 정도 여유는 있던 모양이고. 그래서, 독자로서의 나는 제 삼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 질박한 행복과 같은 정서는, 시대나 환경을 넘어서는 공감과 설득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신경숙씨와 최규석씨에 대해서는 잘 아는바가 없고, 짧은 경험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가였다. 신경숙씨는 에세이를 한 편 읽었는데 공기가 별로 없고 중력이 큰 방에 들어간 느낌처럼 답답했고, 최규석씨는 둘리에 대한 오마쥬인가 하는 단편만화를 봤었는데, 너무 전형적인 패러디라는 느낌에 그저그런 성인물 정도로 치부했었다.

대한민국 원주민 - 8점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 두권은 모두 좋았고, 비슷한 감정의 선을 유지해가며 읽어갈 수 있어 더 좋았다.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캐릭터가 작품에 녹아 있어 작가 개인에 대한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사실은 어머니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작가 품평회가 된 것 같다. 어머니는 너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인지라 오늘처럼 괜시리 마음만 바쁜 날에 쓰기는 어렵다. 그냥 위의 두 작품이 무척 좋았고, 덕분에 작가를 다시보게 되었다는 정도로만 정리할란다.


2009. 5. 5. 14:58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 - 10점
우석훈.박권일 지음/레디앙

우리 팀만해도 20대는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단 한명에 불과한데, 그나마도 올해부로 30대가 되었다. 결국 내 주위의 20대라고 해봐야 처남 밖에는 없는데, 잦은 휴학과 정치적 양비론, 그나마도 한나라에 좀더 기운 시각 등으로 이질적이라는 느낌 외에는 도통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적어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논리를 풀어놓았다. 그간 막연히 느끼기만 했던 20대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있었다.

이에 관한 담론을 찾아보니 역시나, 정치적으로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조선일보에서는 386에 대한 비난의 도구로 사용하고, 진보 쪽에서는 우파에 포섭된 세대론이라는 논지를 펼친다. 나라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20대를 궁지로 몬 건 386이 아니라고. 그리고 나처럼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담론을 펼쳐낸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한 시도인데, 이를 다시 좌우 논리로 전장을 옮겨버리고 외면하는 것은 진보를 대중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고.

한줄 요약하면, 세대론 역시 또하나의 정치의 대결 구도로 삼아간 정치 진영에는 역시나 실망했고, 미약하나마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낸 저자에게는 성원을 보낸다.


2009. 2. 19. 18:13

금융. 공학.

똑똑한 돈 - 8점
나선.이명로 지음/한빛비즈






공학이란, 수학을 기반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엄격한 증명을 거친 몇 가지 수식에 몇 번의 심도있는 때로는 재치있는 응용을 거치면. 커다란 건물도 지을 수 있고, 컴퓨터도 만들 수 있고, 심지어 병도 고칠 수 있다. 그 일련의 흐름을 느낄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돈은 생활의 필요로부터 나왔고, 그 동작 원리-금융-를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수학을 돈에 적용하면서 금융도 공학이라는 문파가 생겼다. 그리고.. 공학은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냈다.

공학은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한다. 하지만 미미한 확률의 위험이 현실화 되었을 때 결과는 치명적이다. 토담으로 만들어진 집이 무너졌을 때와 마천루가 무너졌을 때의 비교해보라. 마찬가지로, 금융에 공학이 도입되기 전에도 승수효과를 누려왔던 돈이. 정밀한 공학의 손을 거쳤다면, 그 파괴력을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막연히 많이 벌자고 시작했던 돈에 대한 관심이 어느 순간부터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한 것 같다. 돈은 그 자체로 역사와 철학, 정치, 사회, 심리, 과학 등등 수많은 지적 탐구의 여지를 제공한다. 종합 예술과도 같다.

그리고. 똑똑해지자.

(아. 이 책은 금융 공학에 대한 책은 아니다. 돈의 역사와 원리를 탐색하고 현재의 금융 위기의 원인과 대책을 제시하는 책이다. 내용이 정말 좋다.)


2009. 2. 16. 15:13

퀀트, 물리와 금융에 관한 회고

퀀트, 물리와 금융에 관한 회고 - 8점
이매뉴얼 더만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승산

박사 진학을 고민할 때 가졌던 두려움 중의 하나는 학위를 이수하고 난 뒤의 삶이 도저히 상상이 안간다는 것이었다. 공학이 이럴진대, 천재와 범재의 차이가 극명한 물리학자의 두려움은 어떠했을까. 저자는 내가 가졌던 바로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물리학계에 뛰어들었지만, 불안한 포닥 연구원 생활을 전전한 끝에 현실과 타협하여 샐러리맨으로 전향한다. 하지만 그간 쌓아온 지적인 능력은 퀀트라는 직업의 여명기에 십분 발휘됨으로써 업계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이 책은 물리학, 컴퓨터, 금융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때론 학자로 때론 회사원으로서 활동해온 저자의 여정을 지극히 담담하게 그려냈다. 다양한 경험은 개인적인 차원과 대비시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며, 전문 분야의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함으로써 지적인 호기심도 충족시켜 준다.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혹은 금융계로의 진출을 꿈꾸는 자연과학도나 엔지니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